[김창준 칼럼] 미국의 고질병 '총기소유'
총기 소유는 현재 미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전미총기협회 (NRA)는 미국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이익집단 가운데 하나다. 버지니아주 국도 66번 한인들이 많이 사는 패어팩스카운티의 4층 건물을 본부로 하고 있는 NRA는 1998년 유명 영화배우 찰톤 헤스톤을 회장으로 선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1993년 초선 의원일 때 찰톤 헤스톤을 만났던 적이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큰 음악회에 초대 받아 그 지역 출신 연방하원의원 두 명과 함께 갔는데 마침 헤스톤이 와 있었다. 음악회 무대 뒤에서 나는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헤스톤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내가 연방하원의원 제이 킴이라고 소개를 했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연방하원의원에 동양인이 있다는 건 전혀 몰랐다"면서 "하와이 출신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바로 이곳 캘리포니아 출신 공화당 의원"이라고 웃으며 답했지만 속으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미국 헌법에 소위 권리장전(Bill of Right)이 있다. 이는 개정안 27개 중 처음 10개에 기록된 것으로 가장 신성한 10개의 기본권을 나열한 것이다. 제일 첫 번째가 저 유명한 종교.언론.표현.집회의 자유이고 두 번째가 총기 소유의 권리이다. 만일 헌법에 명기한 총기 소유권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종교의 자유가 침해될 것이니 총기 규제는 반드시 개헌을 통해야만 한다는 게 공화당의 주장이다. 하지만 헌법 개정은 쉽지 않다. 연방 하원과 상원 각각 3분의 2의 찬성으로 통과시킨 뒤에도 미국 50개주 중 4분의 3(38개주)이 찬성해야 한다.
미국이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렀을 당시 조지 워싱턴 휘하의 병사들은 모두 자원병으로 각자 자신의 총을 들고 나온 군복도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이들이 들고 나온 총기가 미국 독립에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총은 대륙 개척 당시 가령 콜로라도 같은 중서부 지역에서는 인디언들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사냥을 하는데 필수품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총기 소유권을 내세우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이었다. 총기가 애당초 의도와는 달리 인디언이나 영국군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둑질 갱 싸움에 사용되기 때문에 반드시 규제해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981년 3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25세의 청년 존 힝클리가 쏜 총에 맞았다. 한 발은 레이건 대통령을 맞췄지만 치명상은 아니었고 다른 한 발이 그 옆에 있던 백악관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췄다. 그는 기적적으로 생명은 건졌지만 반신불수의 몸이 되었고 브래디의 부인은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미 전역을 다니면서 총기 휴대 금지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제정된 것이 브래디 총기휴대금지법(Hand Gun Control Act) 이다. 이들은 의사당을 찾아와 미국도 한국처럼 총이 없는 사회로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을 바라보던 나는 공화당 출신이지만 총기는 어느 정도 제재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가 NRA의 맹공격을 받았고 골수 보수파들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나는 진정한 미국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앞에서 내가 나라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총기 휴대를 반대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말이다. 결국 1993년 11월 30일에 브래디 총기휴대금지법이 연방의회를 통과했을 때 나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이 법에 반대표를 던졌다. 전통적인 미국인이 아니라는 소리가 지겨웠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다행히도 일반인의 총기 휴대를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총기로 수십 명을 한꺼번에 쏴 죽이는 대형 참극은 없다.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나는 비록 총기 소유를 미국인의 신성한 권리로 보고 의회에서 투표를 했지만 한국은 지금처럼 총기 없는 사회가 유지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