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중앙일보][김창준 칼럼] 제도와 국민성
민주정치 제도 국민이 주인이고 대표를 선출해 나라의 살림을 맡기며 경제는 자유시장에 맡기는 이 제도가 어느 다른 제도보다 성공적이란 결론은 이미 역사를 통해 입증됐다. 그렇다고 민주정치가 완전무결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민주정치 제도보다 더 나은 제도는 아직 지구상에서 발견해 내지 못했다는 것이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다.
1787년 9월 17일 필라델피아에서 미국의 헌법이 통과되자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만 해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군주제 왕이 모든 권력을 휘두르고 백성이 죽고 사는것도 왕의 결정이요 모든 영토 심지어 날아가는 새들도 왕의 소유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미국의 헌법은 대통령을 4년에 한 번씩 백성들의 투표로 선출하고 백성들의 수에 비례해 국회의원을 선출해 이들이 법을 만들고 법원을 세워 왕이 아닌 판사들이 형벌을 결정한다는 이 헌법은 전 세계를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어렵게 채택된 민주정치 제도에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빈부 격차다. 아무리 인간의 평등을 강조하지만 인간의 능력은 평등하지 않아 성공한 부자들은 더욱 앞서가고 기회평등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뒤로 처져 군주제 때만도 못한 빈곤층 생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에 대항해 국민의 평등을 주장하는 소위 사회주의(socialism)와 공산주의(communism) 제도가 나타났다. 그러나 결국 이 제도마저 1인독재로 바뀌더니 국민들의 줄기찬 저항으로 이제 공산주의는 지구상에서 사라졌고 단지 그 잔여물로 북한 하나만이 남았으나 북한은 사실 공산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아들이 아버지의 권력을 세습하는 군주제로 바뀌어 결국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로 전락했다.
반면 미국은 민주제도의 연륜이 쌓이면서 수많은 법이 통과됐고 이 법들로 인해 국민성이 형성 또는 변화해 가면서 미국 만의 독특한 제도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든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 아래 법을 어긴 자는 예외없이 처벌하는 악법도 법이란 법 만능주의로 바뀌면서 감정이 메마른 법치국가가 됐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죄를 지었으면 그 대가를 치르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차디찬 사회가 되었다. 만일 미국에서 인정사정 없는 사법제도가 없었다면 이 큰 나라를 통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사회는 어쩔 수 없이 강력한 제도를 법으로 만들어야 하며 그 엄격한 제도로써 질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미국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들이 연달아 목숨을 잃었다. 공화당은 법질서를 강조하며 법을 어긴 자들에 대해 처벌을 요구했고 경찰의 손을 들어 주었다. 민주당은 범죄자들을 재교육시켜 사회에 내보내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수억 달러의 예산을 범죄예방에 퍼부었고 공화당은 경찰을 더 채용하고 감옥을 더 지어야 한다고 수억 달러의 예산을 범죄처벌에 퍼부었다. 공화당은 한걸음 더 나아가 사형제도에 적극 찬성하면서 사형수들의 상소를 제한하는 법안을 수 차례 제안했었다.
한국은 이와 반대로 나쁜 법은 안 지켜도 된다는 이론 아래 법에도 눈물이 있고 인정이 있는 나름의 독특한 전통이 담긴 법치국가로 발전했다. 이러다 보니 이를 남용해 오히려 경찰을 구타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생기고 자기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툭하면 하야하라고 외치고 법을 만드는 국회 안에서도 기물을 파괴하는 무법사회로 변하고 말았다.
나는 한국의 인정 많고 눈물이 있는 법 해석을 반대하지 않는다. 아무리 법을 어겼더라도 개개인의 사정을 참작하는 인정이 많은 제도 독특한 한국만의 제도가 결코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청문회나 법을 통해 정식으로 자기 의사 표현을 하지 않고 데모대를 형성해 길을 막고 경찰 버스를 파괴하는 이런 과격한 행동은 국민이 주인이란 민주정치의 이념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불법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