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_김창준 칼럼] 미국의 대통령선거
민주당이 이번 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한 7월 26일은 미국 역사에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1789년 미국의 헌법이 탄생한 지 227년, 그리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지 142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의 주요 정당이 여성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날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전반적으로 큰 문제 없이 원만하게 끝났다. 클린턴 후보와 경쟁했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자 일부가 플래카드를 들고 반대했지만 샌더스의 힐러리 지지 선언으로 조용해졌다. 앞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트럼프 지지 거부 연설로 파문을 일으켰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특히 영부인 미셸 오바마의 힐러리 지지 연설이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흑인으로는 미 역사상 첫 대통령이 된 남편과 함께 백악관에 이사 들어온 다음날, 앞뜰에서 개와 함께 뛰노는 두 딸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감격스런 경험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전할 때 청중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나머지 연사들도 한결같이 힐러리를 추켜올리며,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에 맞선 당의 단결과 단합을 강조했다.
이제 양당의 전당대회가 끝난 만큼 오는 11월 8일 실시되는 미 대선전인 본선이 시작된 셈이다. 공화당은 트럼프가 내건 공약이 당의 전통적인 정책과 다소 어긋나더라도 그의 핵심 공약을 거의 다 반영시킬 것 같다. 게다가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트럼프에겐 정치 스캔들이 없다.
반면 30년 가까이 정치에 몸 담아온 힐러리에게는 치명적인 정치 스캔들이 많다. 국무장관 시절 사설 e메일을 사용하면서, 이것이 문제가 되자 무려 3만3000개의 e메일을 자기 서버에서 지운 것은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비록 기소는 하지 않았지만 힐러리의 처신이 '극단으로 부주의'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경선 관리가 극히 편파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도 힐러리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내부적으로 힐러리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면서, 경쟁자인 샌더스를 조롱하고 깍아내린 것이 폭로돼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클린턴 후보의 국무장관 시절 발생한 리비아 벵가지 테러 사건으로 현지 미국대사 등 미국인 4 명이 살해된 것도 민주당에는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힐러리는 이 사건을 왜곡,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터여서 공화당은 이 문제를 그의 극단주의 테러에 대한 잘못된 대응으로 연결해 계속 공세를 펼 전망이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는 얼마 전 49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이슬람 테러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일단 중단할 것을 주장한 반면 힐러리는 인종.종교 차별을 이유로 이에 반대했다. 이처럼 다소 극단적으로 여겨지는 트럼프의 주장은 비단 국내 현안과 관련해서만 나온 게 아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분담금을 경제강국인 한국이 적어도 반반씩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미 우리는 반반씩 부담하고 있는데 아마도 트럼프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재검토해 봤자 쌀을 협상에서 제외한 것과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자는 것 외에는 없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며 북한의 핵 개발을 사실상 방치한 오바마 대통령 재임 8년 동안 북한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같은 첨단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힐러리로부터 대북정책에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반면 북한의 김정은과 단독으로 만나 햄버거를 먹으며 담판을 짓겠다는 트럼프의 말에 우리는 기대를 걸어 볼 만하다. 북한에 대해 노예국가라 규정하며 가장 험한 법안을 얼마 전에 통과시킨 것도 트럼프의 공화당이다.
하지만 28일 힐러리의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은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위대한 미국을 약속하며 희망을 주는 멋진 연설이었다. 조그만 일에도 이성을 잃고 막말을 퍼붓는 경솔한 트럼프를 어떻게 백악관에 보내 수많은 긴박한 사태들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트럼프가 전당대회 이후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탄 것처럼 힐러리의 지지율도 전당대회를 계기로 높아질 것이다. 현재 두 후보가 박빙의 지지율 차이로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 투표가 실시되는 11월까지 이번 대선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숨막히는 접전이 예상된다.
